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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직후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000,Gray><width=54.8%><nopad>[[파일:attachment/136_505.png|width=100%]]||<nopad> [[파일:attachment/RUINA-UNDER-ATTTACK.png|width=100%]]|| || 뉴스위크 || 벨포르 타임즈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000,Gray><width=51.2%><nopad>[[파일:4044869384279.webp|width=100%]]||<nopad>[[파일:ABCDEFG.webp|width=100%]]|| || 타임 || 더 벨포르 || ||<tablealign=center><tablewidth=500><tablebordercolor=#000,Gray><nopad>[[파일:attachment/cnn_911_t323_c.jpg|width=100%]]|| || CNN 뉴스 || 당시 루이나의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호외를 발행하며 사상 초유의 비극을 속보로 전했다. 대부분의 1면 헤드라인은 굵은 활자체로 ''RUINA UNDER ATTACK(공격받는 루이나)''라는 문구를 내걸었으며, 일부 신문은 이 사태를 "루이나 본토 전쟁", 혹은 "21세기의 벨포르 대참사"라고 표현했다. '''국민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 주요 도시에 긴급 경계령이 발동되었고, 루이나 경찰청, 국가방위사령부, 그리고 광역수사국(MIA) 전 간부들이 일제히 비상소집됐다. 전국 모든 공립학교와 대다수의 사립학교는 즉각 임시 휴교에 들어갔으며, 학생들은 교사의 인솔 아래 곧장 귀가 조치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nopad> [youtube(xh4V9PZT2VY)] || || '''테러 발생 당시 루이나의 영공 통제 상황'''[br]{{{-2 역사상 첫 전면적 공중이동통제령(NA-RED)가 NAAS로부터 발령되자(0:52) 수천 대의 항공기들이 레이더망에서 순차적으로 사라진다.}}} || 사건 직후, 루이나 영공 전체가 즉시 봉쇄되었다. 이는 [[NA-RED]](루이나 전시항공통제령)이라 불리는 긴급 조치로, 전시 또는 국토에 대한 무차별 대형 테러 발생 시 민간 항공 운항을 전면 중지하고, 내외국 항공기 전부를 지상에 착륙시키는 국가비상계획이다. 해당 조치는 1979년 '노르테 사태' 이후 제정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발령된 것은 1.19 테러가 처음이었다. 이 조치의 시행으로, 루이나 상공을 비행 중이던 약 2,100대 이상의 항공기는 전원 지상으로 강제 착륙 명령을 받았으며,[* 군용기, 고위급 수송기, 대통령령에 따른 의약품/병력 수송기를 제외하고는 전면 이륙 금지.] 루이나에 접근 중이던 모든 외국 항공편은 경로를 변경해 인근 중립국 또는 출발지로 회항해야 했다.[* 단, 이 와중에도 한 건의 민간 비행만이 예외적으로 허가되었는데, 콜마르 시 외곽에서 독사에 물린 6세 아동이 즉각적인 해독제 투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직접 명령으로 플라자 응급의료항공이 긴급 이륙 허가를 받아 벨포르 종합의료센터로 해독제를 수송했다.] 이때 루이나와 인접한 빌베른, 동사랜드, 고랜드 일부 공항들은 "은하 회랑 계획(Operation Silver Lane)"에 따라 비상 착륙 허가를 내렸고, 출발지 회항이 어려운 외국 국적 항공기들을 임시로 받아들였다. 또한, 벨포르 항과 나보레, 세인트 바룬 등의 주요 항만 역시 전면 폐쇄 조치가 내려졌으며, 모든 입항 선박은 해안 경비대의 명령에 따라 정박·회항하거나 루이나 해군 제3함대의 호위 아래 지정된 해상통제선으로 철수하였다. 9시를 전후한 벨포르 중심부 테러에 이은 연쇄 무장폭동 및 차량 폭탄 공격에 벨포르, 톨루즈, 크레테, 세인트 바룬, 롱비치 등 루이나의 주요 대도시는 사실상 소개령[* 공습이나 대규모 테러에 대비해 도심의 주민, 인력, 차량 등을 외곽으로 소개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당시 생중계된 고층 빌딩에 대한 무차별 무장공격에도 루이나 정부는 여전히 정확한 침투 경로와 배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주요 도시 정부와 대기업, 각급 기관들이 도심을 전면 소개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테러가 발생한 오전 내내 사실상 루이나의 모든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 2차 공격의 잠재 타겟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도심에 위치한 공립·사립학교들도 자체 휴교령을 내렸으며, 이에 따라 패닉에 빠진 시민들이 차량이나 도보로 도시를 빠져나가면서 벨포르, 톨루즈 등은 말 그대로 유령도시가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한 기자는 이를 “헐리우드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표현했으며, 실제로 도심행 고속도로는 텅 비었고 외곽방면은 수백만 대의 차량으로 완전히 정체 상태였다고 한다. 이처럼 루이나 본토 상공이 봉쇄되고 전국의 수십 개 대도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면서, 루이나는 적어도 1월 19일 하루 동안은 완전한 전시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술한 대로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은 사건 당시 초등학교를 시찰 중이었다. 국무실은 당시 대통령이 학교 강당에서 연설을 준비 중이었으며, 대통령은 곧바로 연설을 취소하고 현장지휘통제반(NCRC) 지하 벙커로 이동을 요청했으나, 현장 여건상 안전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현지 공군기지에서 에어포스원에 긴급 탑승하게 된다. 그 직후 루이나 국가정보국(NIA)과 광역수사국(MIA)은 '''“다음 타겟은 ‘엔젤’(에어포스원 호출명)이다”'''라는 교신을 감청했다. 즉시 전용기의 조종석은 군사경찰 헌병 장교가 봉쇄하였고, 대통령 경호부는 기내의 모든 무기를 압수하고, 엘스워스 대통령의 전용실 주변에 전원 배치하여 외부 접근을 차단했다. 심지어 신원이 확인된 보좌관조차 별도 허가 없이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에어포스 원은 전투기 호위 없이 남부방공지대 상공을 단독으로 비행하고 있었으며, 긴급 출격한 F-22 호위기 2기는 연료 부족으로 속도를 늦추며 근접 비행을 시도해야 했다.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즉시 복귀할 것을 요청했으나, 비서실장과 국가안보국, 비밀경호국이 모두 이를 만류했다. > “다음 공격이 지상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지금은 공중이 가장 안전합니다.” 이 시점에서 엘스워스 대통령이 공군 상층부와 국가안보참모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체를 벨포르로 복귀시키는 대신 세인트 바룬 인근 제5해군기지에 착륙하기로 결정하였다. 의전 차량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대통령은 급히 대기 중이던 민간 수송밴에 탑승해야만 했다.[* 당시 현장 관계자는 “루이나 대통령이 민간 밴에 탑승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후 즉시 대국민 연설 준비를 위한 임시 방송 시스템이 설치되었고, 대통령은 이곳에서 생애 첫 “전시 비상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설이 열악하고 통신 품질이 떨어지자 곧 크레테 외곽에 위치한 제2연합지휘소로 이동, 보다 정밀한 지휘 통제가 가능한 '델타 사령부'로 전환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전용기의 모든 탑승자에게 탄저균 백신과 생물학 무기 노출 대비용 마스크가 지급되었으며, 기내 감염 전파 차단 프로토콜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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